
[키드신] 재회
언제나처럼 도쿄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옥상이었다.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 사이를 가르는 새하얀 날개가 보였다. 이 밤을 자신이 지배하는 것 마냥 하늘을 누비는 모습이 아름다워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가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해 날아온다. 하얗게 펄럭이는 날개가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앉는 것 같은 환상감이 들게 했다. 타악- 하고 그의 구두가 사뿐히 옥상 바닥에 닿았다. 하얀 장갑을 낀 늘씬한 손으로 모자 끝을 살짝 들어 올리자 그의 푸른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개구진 미소를 띠고 있는 입술이 이내 움직였다.
다녀왔어, 명탐정.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달싹이는 입술 새로 그리 말하는 듯 했다. 아니,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환청처럼 들리는 것일 지도. 내 앞에 내밀어진 큰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을 올려 다시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왜 잡지 않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그였다. 너무나 잡고 싶은 그의 손이지만, 잡는 순간 이 꿈이 부서져 버릴 것을 알기에 그저 바라만 보았다. 잡지 않는다고 해서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지만, 단 몇 초라도 더 그의 눈을 마주하고 싶어서, 그 미소를 보고 싶어서, 밤하늘같이 반짝이는 눈빛을 느끼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며 버텼다. 결국 그가 손을 뻗어 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커다란 손이 나의 손을 빈틈없이 감싸 쥐었다. 그러나 온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이것은, 꿈이었기에. 꿈임을 내 자신이 너무나 잘 알기에. 현실이라면 따스할 그 손이 무감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늘 정해진 이야기처럼 그와 순을 잡는 순간,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에 아직 야심한 시각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사라진 내 마음은 어둡기 그지없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밝은 빛을 내며 방을 비추는 달이 야속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혹시나 달빛에 눈물로 범벅된 내 얼굴이 드러날까, 숨죽여 눈물을 두 손바닥에 흘려보냈다. 모두 나의 잘못이었다. 조직과의 싸움은 나 혼자 감당했어야 했는데, 그가 돕겠다는 것을 끝까지 말리지 않은 것이 모든 일의 원인이었다. 결국 밤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온 세상에 각인시키며, 조직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길 위한 도발이라는 위험한 작전을 실행하던 그였다. 단호하게 말렸어야 했는데, 그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나의 믿음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는 웃으며 다녀올게, 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나의 작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움직였더랬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아직도 눈에 선연했다. 탕- 하고 그의 무대를 가로지르는 조직의 탄환이 그의 몸에 파고들던 그 순간이, 잔인하게도 너무나 선명하게 나의 두 눈에 각인되었다. 힘없이 추락하던 그 하얀 날개가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돌아올 거라는 나의 우스운 오만이, 이런 처참한 결말을 만들어 낸 것인가. 그 후 모든 인력을 동원해 그를 찾았지만, 그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괴도키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 사이 조직은 와해되고 나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는, 내 곁에 돌아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꾸는 꿈은 나의 간절한 소원의 형상화된 모습이었다. 그가 그렇게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를. 아무렇지 않게 여느 때처럼, 나의 품으로 날아들기를. 사무치게 원하는 나의 소망이 매일 밤 내 꿈으로 스며들었다. 꿈속에서 그를 볼 땐 행복하다가도, 곧 깰 거라는 것을 아는 순간 절망이 밀려들었다.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의 끝자락에서 나는 매일 밤 홀로 그를 그려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밖에서 사건을 해결하다가도, 혼자 남겨지게 되면 늘 끝없는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잠겨 눈물을 받아내던 손바닥을 털어버리고는 고개를 들자,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창문 틈 사이로 무언가 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종이에 새겨진 익숙한 마크에, 두 눈을 의심하며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채 행해지는 격한 움직임에 발목이 삐끗해 시큰거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었다. 그저 눈앞의 종이의 정체가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만들어낸 환각이 아닐까, 하는 불신에 창문을 열었다. 자그마한 종이가 팔락거리며 발치에 떨어졌다. 종이를 향해 뻗는 손이 덜덜 떨렸다.
- 우리가 함께 했던 마지막 무대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게. 명탐정. -
익살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마크가 단정한 글씨 아래 새겨져 있었다. 그 위로 겨우 멈추었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얼룩을 만들어냈다. 당장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시내로 뛰어 나갔지만 시간 탓인지 택시가 보이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렸다. 결국 뛰기를 선택한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그와 헤어졌던, 그 빌딩으로 향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은 달리기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인한 거친 박동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옥상 문을 벌컥 열었다. 녹슨 쇠가 끼이익- 하고 듣기 싫은 소음을 내었지만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그와 닮은 하얀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달과 별이 자신의 것이라는 듯 밤하늘을 누비는 날갯짓에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겼다. 난간에 가까이 다가서자, 그가 내게 날아들었다.
타악- 하고 그의 구두가 사뿐히 옥상 바닥에 닿았다. 하얀 장갑을 낀 늘씬한 손으로 모자 끝을 살짝 들어 올리자 그의 푸른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개구진 미소를 띠고 있는 입술이 이내 움직였다. 늘 꾸던 꿈과 같았다. 사실은 이것도 내가 만들어낸 꿈이 아닐까.
“다녀왔어, 명탐정.”
그러나 상상만 해오던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나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꿈이 아니었다. 늘 귓가에 환상처럼 맴돌던 목소리가 현실이 되었다. 새어나오는 흐느낌에, 입을 틀어막자 그가 나를 품에 가두었다. 이제는 온기가 느껴졌다. 나의 온 몸 구석구석에, 그의 온기가 전해졌다. 이제야 그 지긋지긋한 꿈속에서 벗어난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왜, 왜 이제야 왔어. 울음에 묻혀 뭉개진 발음에도 그는 나의 등을 가만히 도닥여주며 머리칼에 입술을 묻었다.
“미안, 너무 먼 길을 날아오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어.”
담담하지만 쓰라림이 묻어나오는 그의 목소리에 더욱 힘주어 그를 끌어안았다. 생사의 길에서 돌아 와 준 그가 고마웠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그의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그의 뒤에 펼쳐진 밤하늘도 드디어 주인을 만났다는 듯 더욱 반짝였다. 늘 꿈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가. 지금 내 곁에, 꿈처럼 다가왔다.
